• 2014-03-12 14: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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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 Marymond


우리는 인생에서 관계를 통해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 몇몇은 친구 중에 ‘진정한 벗’이 있다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친구와 벗의 차이는 무엇일까?

만약 친구와 사업이나 특별한 어떤 일을 함께하게 되면, 친구가 아닌 또 다른 관계와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이름은 동업자, 동역자 그리고 동반자이다. 이 단어의 분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동업자는 수익을 목적으로 함께 일하는 관계다. 수익이 없다면, 관계는 사라진다. 동역자는 돈이 아닌 특별한 사명, 사역으로 함께 일하는 관계다. 비록 돈에 의해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과 비전이 다르면 서로 헤어진다. 마지막으로 동반자는 돈과 비전 때문에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동반자는 오직 ‘함께’함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유니타스브랜드]의 벗 된 동반자이며, 브랜드 세상에 함께 살아갈 소울 메이트(soul mate). 마리몬드(Marymond)를 소개하겠다.

청년 윤홍조와 만남


만약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시위 현장에서 윤홍조 대표를 처음 만났다면, 그를 사회운동가로 생각했을 것이다. 윤 대표는 1시간 30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의 발표 순서를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왜 그는 이곳에 서 있는 것일까? 10년 뒤에도 여전히 그는 이 자리에 있을까?  

UB : 왜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군 제대와 동시에 복학 후 많은 생각이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복학생들과 비슷하게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있었죠. 하지만 남들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인액터스 (Enactus)라는 개념의 공동체를 2010년 3월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내 전공을 활용하여 지속가능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이 너무 멋졌습니다. 처음 공동체에 들어가서 배치받은 프로젝트가 블루밍 프로젝트였습니다. 블루밍 프로젝트 소속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복지와 인권 회복 운동에 힘쓰는 NGO들의 (기부금에 의존하는) 재정구조 개선을 위한 비즈니스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실리콘 밴드 팔찌나, 에코백 등을 만드는 작업, 희움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에 동참하였습니다.


UB : 대학 졸업후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학교를 마칠 시점이 되었고, 인액터스와 블루밍 프로젝트 활동도 마칠 시점에 어떠한 갈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분명 ‘희움’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할머니들께서는 계속 소천하시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는 제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무엇이 진정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인지에 대한 진정한 고민도 없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자괴감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나에게 정말 후회 없을 정도로 업으로 삼고 해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해외 사람들이 상품과 콘텐츠 소비를 통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올바르게 알게 하고, 공감하게 하자.” 라는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창업은 시작되었고, 굳이 할머니를 위한 다른 브랜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보다는, 서브 브랜드를 만들어 통합적이고도 강력한 ‘희움’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기여하고자 ‘희움 더클래식’이라는 서브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UB : 도움이 필요한 사람 중에 '위안부' 할머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선택했다기보다는 제가 선택받은 것 같은데요. 우연히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제가 알고 있던 생각들이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일례로 처음에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위해 활동하는 NGO의 수익 사업과 관련된 전략을 짜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당연히 아무 이해도 없는 상황에서 방법론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쓰레기 같은 전략만 나오더라고요. 그러다가 역사관에 가게 되고, 그 역사관 바로 옆에 있는 쉼터에 계신 할머니들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어요. 역사관에서 경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슬픈데, 쉼터에서 만나 뵌 할머니들은 우리 할머니랑 다르지 않은 거에요.


굉장히 큰 충격이었죠. 이 아픔을 내가 외면해 왔다는 것, 그리고 그 아픔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봐왔다는 것. 그게 너무 죄송했어요. 그때부터 부채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활동을 열심히 하면 그 부채의식이 없어질 것 같았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알면 할수록, 수요집회에 참여하거나, 역사관에 다시 갈 때마다 생각은 더 깊어졌어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관점이나 방법들의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결국,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죄송함은 더 커졌어요. 마치 벗어날 수 없는 늪 같아요.

윤홍조 대표는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보다, 더 많은 통증을 느끼게 되었다. 더 나아가, ‘과연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인생을 사는 여자들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아픔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렇게 마리몬드라는 브랜드는 윤홍조 대표의 아픔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졌다. (계속)


Marymond 01. 마리몬드를 심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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